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로크 음악/역사 (문단 편집) ==== 초기 바로크 ==== 사실상 전술한 새로 만들어진 오페라 등 극음악의 창시가 초기 바로크 극음악의 역사나 다름없다. '''[[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.|더 설명할 필요가 있겠는가?]]''' 새로운 바로크 양식으로 된 교회음악에는 [[모테트]]나 [[미사곡]] 대신 성악과 기압 합주의 다양한 편성을 포괄한 의미로 '콘체르토'라는 이름을 붙였다.[*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협주곡의 어원.] 이러한 곡을 '종교 협주곡'이라 불렀는데, 독창에 통주저음만 붙은 것부터 몇 개의 합창단을 포함하는 대규모 협주곡도 있었다. 음악가 [[로도비코 비아다나]](Lodovico Viadana)는 1602년 <백 개의(...) 교회 협주곡>(Cento concerti ecclesiastici)라는 협주곡 작품집을 출판하였는데 그는 종교음악에 '협주곡'이라는 새로운 양식을 최초로 채택한 작곡가로 꼽힌다. 전술한 몬테베르디는 종교음악에서도 새로운 양식을 바탕으로 곡을 썼다. 그럼에도 그의 작품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양식과 옛 양식이 공존하고 있었는데, 예를 들어 몬테베르디의 성모 마리아를 위한 저녁 기도>(Vespro della Beata Vergine)는 화려한 악기편성과 새로운 양식으로 유명하지만, 르네상스 양식의 무반주 다성 미사곡들도 작곡했다.[* 이 저녁 기도곡과 몬테베르디의 미사곡 중 하나, 두 곡 모두 몬테베르디가 1610년 출판한 모음집 <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6성 미사와 저녁 기도>(Sanctissimae Virgini Missa senis vocibus ac Vesperae)에 들어있다.] || [youtube(iJOaljWCxuY, width=430, height=230)] || [youtube(n_5vEG-WF1M, width=430, height=230)] || ||<-2>'''왼쪽''': 몬테베르디의 '''성모 마리아를 위한 저녁 기도, SV 206''' 중 '''예루살렘을 찬양하라Lauda Jerusalem.''' 연주는 [[존 엘리엇 가디너]].[br][br] '''오른쪽''': 같은 곡집에 실린 '''미사곡, SV 205''' 중 '''키리에.''' 연주는 [[필립 헤레베헤]]. 이 둘을 한번 비교해서 들어보자. || [[오라토리오]]도 이 시기에 탄생한 장르나, 앞에서 충분히 설명했으므로 넘어가자(...). [[몬테베르디]]의 뒤를 이어 이탈리아 몇몇 등지에서 오페라가 더욱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그 중요한 작곡가는 [[프란체스코 카발리]]이다. 그는 몬테베르디에 비해 [[아리아]]를 중시하였다. 또한 적기는 하지만 아리아에 풍부한 기악 반주를 넣기 시작했다. 바로크 초기의 소나타는 단순히 '연주되는 곡'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. 초기의 소나타는 짧은 악장이 여러 개가 있고, 성부의 수가 네 개 이상이였다. 초기 이탈리아의 소나타 작곡가 중 가장 중요히 다루어지는 작곡가는 [[살라모네 로시]](Salamone Rossi)와 [[비아조 마리니]](Biagio Marini)이다. 로시는 거의 유럽 최초로 [[트리오 소나타]]를 작곡했고, 마리니는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했기 때문에 바이올린의 혁신적인 주법에 맞춘 화려하고 기교적인 작품을 작곡했다. 이 시대 건반악기 작품의 작곡가로는 [[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]]가 유명한데, 그 이후 100여년간 이탈리아에서는 그와 견줄만한 건반악기 작곡가나 연주가가 없었다. 프레스코발디의 건반악기 곡은 [[바흐]]는 물론 당대와 후대의 모든 건반악기 작곡가들, 특히 남부 독일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. 그는 연주자 개개인의 감정적인 반응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상상력과 연주자의 자유로운 표현이 기교적이고 실험적인 연주를 위해 필요하다고 [[역설]]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